한국 이기려고 무리했나…중국 조선사, 선박건조 포기
수주를 위해 무리한 저가수주에 나선 중국 조선사가 이후 후판을 비롯한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손실이 확대되면서 인도지연 뿐 아니라 계약취소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조선사들은 3년전 저가수주한 선박들의 원자재가 급등으로 손실이 확대되며 건조 불가상태입니다.
이에 무차별 지원에 나섰던 중국 금융권도 수익성을 판단해 RG 발급 여부를 검토중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면서 자국 조선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고위험 사업으로 판단한 중국 금융권은 수익이 예상되는 계약건에 대해서만 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하며 과거 무차별적인 지원에서 선별지원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23일 트레이드윈즈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벨기에 선사인 CMB(Compagnie Maritime Belge)가 중국 칭다오양판조선에 발주한 12척의 6000TEU급 컨테이너선 인도가 지연되고 있으며 일부는 계약이 취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아이스클래스(Ice-class) IA의 내빙등급과 1150개의 냉동 컨테이너를 적재할 수 있는 이들 선박은 지난 2020년 6척이 발주됐으며 동형선 6척에 대한 옵션계약이 포함됐습니다. 옵션계약은 지난해 3월 발효됐습니다.
현지 업계에서는 확정 발주된 6척은 지난해 인도될 예정이었으나 건조작업이 지연되면서 올해 4척을 인도하고 나머지 2척은 2024년 5월까지 인도하는 것으로 미뤄졌습니다.
나머지 6척에 대해서는 사실상 계약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칭다오양판조선과 CMB 측은 계약 진행 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현지 업계 관계자는 나머지 6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강재 주문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선박 수주를 위해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무리하게 계약을 추진한데다 수주 이후 2년간 원자재가격이 급등한 것이 선박 인도지연과 계약취소를 초래했다는 평가입니다.
CMB는 척당 5000만달러를 밑도는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는데 같은 6000TEU급 선박이라 해도 내빙등급과 냉동 컨테이너 적재를 위한 전기설비가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계약 시점에서 이미 칭다오양판조선의 손실이 예상됐습니다.
게다가 이후 2년간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서 조선소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업계도 2020년 당시 톤당 60만원 수준이던 후판 가격이 지난해 12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원자재가격 급등 이전 체결한 계약들은 대부분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수주한 선박들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정책적으로 자국 조선업계의 선박금융을 적극 지원해왔던 중국 은행권들도 보수적인 시각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 은행들은 자국 조선업에 대해 하이 리스크(High-risk) 사업으로 보고 있으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수주건에 대해서만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을 발급하고 있다"며 "칭다오양판조선이 계약한 나머지 6척에 대한 RG는 발급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칭다오양판조선은 저가수주에 원자재가격 급등까지 겹치며 상당한 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CMB는 이 계약을 통해 적잖은 수익을 거뒀습니다.
CMB는 지난해 초 확정 발주된 선박 6척을 프랑스 CMA CGM사에 매각했는데 매각 당시 시장가격은 척당 7800만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계약 당시 선박가격이 5000만달러라고 가정해도 CMB는 선박 운영 없이 총 1억6800만달러에 달하는 차익을 거둔 셈입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컨테이너선 시장이 호황을 지속하다 하반기 이후 가파른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칭다오양판조선에서 아직까지 건조가 이뤄지고 있는 선박을 인수한 CMA CGM도 이를 바탕으로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2010년대 들어 중국 은행권들이 선박 관련 여신과 투자를 리스 쪽으로 많이 넘겼고 중국 정부는 2013년부터 지원해야 할 조선소를 추려내는 '화이트리스트' 작업을 진행하며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는 '화이트리스트'가 없다고 하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지원하는 조선소와 그렇지 않은 조선소에 대한 구분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사회주의 국가이나 자본주의 논리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 중국의 경제구조는 다소 혼재된 양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조선업계 신조선가 방어 관건
작년 하반기 들어 등락을 반복하던 조선업계 신조선가가 최근 완연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요 조선사들이 넉넉한 일감을 바탕으로 가격 협상에서 완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운임 하락에 따른 해운사들의 선가 인하 압력이 예상되며 향후 신조선가 추이에 관심이 주목됩니다.
업계 정보에 따르면,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Clarksons Research사가 집계하는 신조선가지수(Newbuilding Price Index)는 이달 17일 163.38을 나타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2009년 2월 13일 이후 처음으로 163을 넘어선 데 이어 3주 연속 163 이상 수준을 유지한 것입니다.
신조선가 지수는 1998년 전 세계 선박 건조 가격 평균을 100으로 기준 잡아 지수화한 것으로 숫자가 높을수록 선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선가가 지난 21개월 간의 상승기 때처럼 오르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 선가 상승은 원자재값 상승분을 반영한 결과"라며 "후판값이 지금보다 더 오르진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앞으로 선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운임 약세가 변수입니다. 컨테이너 해상 운송료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이달 10일 995.16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지수가 1,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20년 6월 이후, 2년 8개월 만입니다.
뿐만 아니라 LNG운반선과 석유제품운반선(PC) 운임도 각각 2022년 11월 및 12월 고점을 끝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한 소비 위축 등으로 지속적인 운임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에도 올해 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해운사들은 조선업계와 선가를 두고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조선업 입장에서는 선가를 잘 방어해내야 합니다.
현재 주요 조선사들의 분위기는 긍정적입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가 전망한 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컨센서스(실적 추정 평균치)는 흑자 전환한 8,91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 2021년 적자 전환한 이후 2년 만입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2023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도 각각 1,161억원 및 2,298억원으로 모두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경우 삼성중공업은 2015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2021년 이후 이어진 적자 고리를 끊어내게 됩니다.
우리 조선사들은 약 3.4년치 일감을 확보했으며, 이는 금년을 포함해 약 1~2년의 침체 시황이 발생한다 해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따라 단기적 시황 침체에도 신조선 가격을 대폭 인하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수익성 위주의 수주활동이 가능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