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선박 부가가치 격차 갈수록 줄어…고가 시장도 경쟁 치열
한국 조선산업이 주도하고 있는 고부가가치‧고가 선박 시장도 중국에 턱밑까지 추격당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가 지난 8일 발표한 4월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한국이 13척‧38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점유율 20%, 중국은 62척‧141CGT로 76%를 차지했습니다.
수주 척수 및 CGT는 한국과 중국이 매월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나, 수주 계약 체결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2위를 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수주 선박의 부가가치, 즉 선가를 추정할 수 있는 척당 평균 CGT가 한국이 중국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CGT(Compensated Gross Tonnage)는 선종 및 선형의 난이도에 따라 건조할 때 공사량을 동일 지표로 평가하는 방법으로, 총톤수(GT, Gross Tonnage)에 환산계수를 곱해 산출된 톤수입니다. 한국이 수주 선박 척 수가 적어도 중국보다 높은 총 CGT는 큰 차이가 없고, 척당 평균 CGT가 높은 것은 그만큼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수주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4월에는 이러한 추세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 기간 한국의 척당 평균 CGT는 2만9231CGT, 중국은 2만2742CGT로 차이가 6489CGT였습니다. 클락슨리서치 집계 이래 척당 평균 CGT 차이가 이처럼 좁혀진 것은 4월이 처음입니다.
한국의 척당 평균 CGT는 매년 4만~5만CGT대였고, 중국은 1만~2만CGT대에 머물렀습니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한국은 1월 5만3333CGT → 2월 4만5882CGT → 3월 5만2333CGT였고, 같은 기간 중국은 2만8000CGT → 1만7779CGT → 2만2093CGT였습니다.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선주들의 선박 발주가 1분기에 몰린 데 따라 4월에는 숨 고르기 차원에서 계약 체결 건수가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클락슨리서치는 4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80척 185만CGT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 올해 3월 대비 44% 감소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도 매년 4월마다 수주량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2019년 4월 9척‧47만CGT △2020년 4월 9척‧30만 CGT △2021년 4월 35척‧129만CGT △2022년 4월 22척‧116만CGT 등이었습니다. 이를 놓고 보면 올해 4월 수주 척수는 부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척당 CGT가 급락한 것은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4월에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수주가 줄었거나 계약했어도 클락슨리서치 통계를 반영하는 시기가 5월로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중견 조선사들의 수주한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범용 선박 수주실적이 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5월 이후 수주가 늘면 격차는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4월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국내 조선 빅3가 3년 치 일감을 채운 뒤 선별 수주를 하는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계약을 중국이 따내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중국이 전체 수주 척수도 늘고, 선박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주 선박의 평균 부가가치도 높아질 것이며 실제로 범용 상선을 제외한 고가 선박만 비교한다면 한국과 대등하거나 추월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습니다.
대형 조선사 고위 관계자도 “품질과 성능에서는 아직 우리보다 못하지만, 중국도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어 수주전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면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한국은 고객 맞춤형 선박 개발에 힘쓰는 한편, 중견 조선사의 수주 선종 고급화를 위한 정부의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K-조선, 안심하긴 이르다…수출도 중국에 추월당해
한국 조선산업이 최근 수주 물량 급증으로 부활을 알리고 있으나 유일하게 중국을 앞섰던 수출에서도 3년째 추월당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주도권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6일 한국무역협회가 제공하고 있는 한국(관세청)과 중국(해관)의 품목별 수출입 통계를 활용해 상선(주로 화물선, HS코드 8901 기준) 수출 통계를 비교해 본 결과, 올해 1분기 한국의 상선 수출액은 37억6600만 달러, 중국은 42억7300만 달러로 중국이 5억 달러가량 앞섰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발발 직후인 1998년 이후 연간 기준 한국 상선 수출이 중국에 밀린 것은 총 4개년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상선 발주 시장이 급락하면서 한국이 상선을 수주하지 못해 위기를 겪은 2012년(한국 305억6600만 달러, 중국 322억1100만 달러) △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한국 빅3는 물론 중견‧중소 조선사까지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2018년(157억9300만 달러, 169억7300만 달러)입니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 상선 발주 가뭄이 겹쳐 일감을 따내지 못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었던 △2021년(167억5600만 달러, 191억5400만 달러) △2022년(152억5900만 달러, 192억700만 달러)에는 2년 연속 중국에 뒤졌습니다.
통상 조선 시황의 호황과 불황을 결정하는 3대 지표는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가 매월 발표합니다. 클락슨리서치의 지표는 수주 직후부터 미래 시점을 추정하는 근거로 활용됩니다. 반면, 수출액은 관세법에 따라 관세선(수출 신고)을 통과하느냐로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앞서 수주한 선박이 판매 완료됐는지의 결과를 나타냅니다. 클락슨리서치가 제공하는 선박 인도량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최근 수주한 물량을 대거 건조해 인도량을 늘리고 있어 2분기 이후의 추이를 봐야겠지만, 선박 건조는 조선사의 연초 계획에 맞춰 계획적으로 이뤄지므로 수출액을 큰 폭으로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3년 연속 수출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량‧수주잔량‧건조량 등 조선업 3대 지표에서 세계 1위에 오른 한국은, 수출도 일본을 웃돌며 명실상부한 최고 조선 국가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들어 중앙과 정부의 지원 아래 무섭게 치고 올라온 중국에 3대 지표에서 모두 밀리며 최강국 자리를 내줬습니다.
비록 3대 지표에서는 뒤졌지만, 한국은 수출액에서는 중국을 압도해왔습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과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비교 우위에 있고, 무엇보다 수십 년간 관계를 이어온 해외 메이저 선주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조선산업 육성 초기에 물량 대부분을 자국 해운사 발주로 채웠던 중국 조선사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매우 낮은 건조비로 응찰하고,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기술을 10년 가까이 축적했습니다. 여기에 자국 정부와 금융기관이 매력적인 선박 금융을 제공하면서 해외 선주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중국에서 건조한 선박 가운데 수출 비중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현재는 수주 선박의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한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는 “양과 질을 모두 갖춘 중국 조선사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한국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며, 지금 이러한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상선 수출을 활성화하려면 대기업은 물론 중견 조선업체들이 수주를 늘릴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권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1분기 HD현대 계열사가 선박 수주 80% 싹쓸이..
올해 1분기 한국 조선사가 수주한 선박 10척 중 8척 가량은 HD현대그룹 조선 계열사가 수주한 선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조선 3강의 나머지 축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부진한 사이 한국조선해양을 앞세운 HD현대그룹이 압도적인 '원톱'으로 치고 올라왔습니다.
16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HD현대 조선계열사(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수주 점유율은 79.1%로 집계됐습니다.
회사별로 보면 현대삼호중공업이 284만3000GT(총톤수)를 기록하며 전체의 54.6% 차지했습니다. 이어 HD현대중공업이 77만2000GT로 14.8%, 현대미포조선이 50만2000GT로 9.7%를 기록했습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이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빠르게 연간 수주 목표도 채우고 있는중입니다.
이달 초를 기준으로 한국조선해양은 누적 76척, 97억9000만 달러를 수주했는데, 이는 올해 초 세웠던 수주목표(157억4000만 달러)의 62.2% 수준입니다. 약 4개월 만에 연간 목표의 60%를 넘기면서 올해 수주 목표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반면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물량 중 약 40% 가량을 차지했던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1분기 삼성중공업의 수주 점유율은 58만7000GT로 11.3%를 차지했는데, 이는 지난해 연간 점유율(23.1%) 대비 절반 수준의 점유율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1분기 32만6000GT에 그치면서 전체의 6.3%에 머물렀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국내 조선 수주 물량 중 20.8% 가량을 차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점유율 하락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한화그룹으로의 기업결합 이슈로 한동안 수주가 뜸해진 상태입니다. 기업공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초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척 수주 소식을 전한 뒤 한 달 넘게 추가 수주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23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한화오션'이라는 새 사명으로 새출발할 예정입니다. 특히 1분기 조선3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2분기부터는 다시 공격적인 수주활동과 함께 경영 정상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카타르발 LNG선 2차 물량도 남아있기 때문에 하반기에 발주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