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발목 잡는 ‘공정위’ 뒤에 숨은 경쟁사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한국형 록히트마틴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면에는 HD현대중공업·한진중공업 등 경쟁사들의 지속적인 이의제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함정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것인데, 당장 올해와 내년 대형 함정사업 발주가 몰려있는 상황에서 공정위 심사가 늦춰지면서 한화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이 모두 완료된 상황에서 업계 일방의 주장 때문에 국내 공정위 심사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매우 아쉽고 우려된다”며 이의제기를 한 경쟁사를 직격했습니다. 콕 짚어 말하진 않았지만 HD현대중공업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만 12조원. 국민 세금이 걸려있는데다가 한화그룹 투자 유치 없이는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이 불투명해질 수 있는 만큼 산업은행이 공격적으로 공정위·HD현대중공업 등을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함정시장에서의 경쟁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레이더·통신장비·발사대 등 군함 필수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와, 함정을 만드는 대우조선의 결합으로 수직계열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일 공정위는 브리핑을 통해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마련해 제출하라고 요청했다”며 협의 중이라 밝혔지만, 한화 측이 “현재까지 공정위로부터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안 받은 바 없고 이에 대해 협의 중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정면반박에 나서는 등 ‘진실공방’ 해프닝이 일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논란 이면에는 경쟁업체들의 이의제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한화-대우조선 결합으로 인한 경쟁사는 HD현대중공업과 한진중공업 등입니다. 이들이 공정위에 지속적으로 이의제기를 하면서 공정위가 이들의 눈치를 보고 기업결합심사 결정을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화로서는 시간을 끄는 공정위의 행보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미 지난달 31일 EU 경쟁당국인 집행위원회가 한화와 대우조선의 양사 결합 승인을 결정하며 튀르키예·일본·베트남·중국·싱가포르·영국 등 해외 7개 경쟁당국 모두 양사결합이 자국에서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바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위 브리핑에 기업이 이례적으로 반박에 나선 것도 이러한 불편감이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산업은행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 공정위와 경쟁사들을 겨냥한 공세에 나서고 있습니다.
KDB산업은행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전달하기로 한 입장문에서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이 모두 완료된 상황에서 업계 일방의 주장 때문에 국내 공정위 심사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매우 아쉽고 우려된다”며 “한화의 2조원 유상증자가 없이는 대우조선은 생존이 불투명하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은 “공정위는 방산부문 수직 결합 이슈를 제기했는데, 방산 부문 분리 매각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대우조선 정상화의 대안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화와 대우조선 채권단 측은 방산시장의 경우 국가가 관리하는데다가 원천기술이 국가소유로 돼있고 입찰과정에서 모든 참여자에게 기술정보가 제공된다는 점을 근거로 공정위의 뒤에 서있는 경쟁사들이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공정위를 압박하고 있지만 산업은행이 언급한 ‘업계 일방의 주장’은 명백히 이의제기를 하고 있는 경쟁사들 특히 ‘HD현대중공업’을 대놓고 직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상함 시장의 강자였지만, 경영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HD현대중공업에 시장을 모조리 내줬습니다. 중·대형 수상함 건조 실적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나라 해군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을 현대중공업이 맡아 건조하는 등 수상함 시장을 현대가 꽉 잡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원조 강자인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의 품에 안겨 거침없이 성장하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공정위가 언급한 ‘함정시장에서의 경쟁 훼손’ 역시 다수 경쟁사 중에서도 HD현대중공업이 누구보다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산업은행은 한화의 투자로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된다면 국내 방산업의 양적·질적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큰 그림’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늦추고 있는 공정위와 뒤에 선 경쟁사들을 정조준 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만일 기업결합 무산으로 대우조선 정상화가 실패할 경우, 국내 조선·방산업 경쟁력 저하 뿐만 아니라 수만명의 고용과 수백개의 협력사 등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며 그 책임은 명백히 공정위에 있다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K-방산의 수출은 173억달러로 승승장구하는 반면, 해상 방산은 내수에 국한돼 수출이 전무하고 시장 규모도 2조원에 불과하다”는 지적 역시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의제기를 한 경쟁사 입장에서도 책임 문제를 언급하고 나서는 산업은행과 무작정 대립각을 세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공정위 역시도 경쟁사들의 이의제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책임론의 중심에 서는 것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산업은행에서는 “공정위의 주장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가설적인 상황을 전제로 경쟁 제한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 경쟁사인 HD현대그룹의 경우 엔진·프로펠러·함포 등 이미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상황”이라 밝혔습니다. 공정위와 HD현대중공업에 더 이상의 발목잡기는 그만두라고 사실상 엄포를 놓은 모습입니다.
이미 대우조선은 부채비율 1800%, 2년 연속 조단위 손실 등으로 독자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 투입된 공적자금만 12조원에 달합니다.
한화의 투자만이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현 상황에서 인수 자체가 물거품이 된다면 정부의 부담 역시 커집니다. 산업은행이 공정위와 경쟁사들을 상대로 공격적 행보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국내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되면 한화는 신규 자금 2조원을 투입해 대우조선 경영권 지분(49.3%)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한화는 이를 통해 ‘글로벌 종합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고자 그룹 내 방위산업 부문을 통폐합 하는 등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RG발급 무산 여파’ 지난해 중견조선 선박수주 44% 급감
국내 중견조선사들의 지난해 선박 수주량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하지 못해 건조계약이 취소된 게 핵심 원인입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형조선사들은 탱크선 16척, 컨테이너선 12척 등을 확보했지만 전년 대비 44% 감소한 75만CGT(수정환산톤수)의 수주량을 기록했습니다.
상반기엔 케이조선이 수주한 8000TEU급 8척이 RG 발급을 받지 못해 건조 계약이 취소되면서 48% 감소한 45만CGT, 하반기엔 컨테이너선 수주가 크게 줄면서 38% 감소한 30만CGT에 각각 그쳤습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중형조선사 수주실적은 2021년을 제외하고 SPP조선과 성동조선해양 등 주요 중형조선사가 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가장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전반적인 조선업 활황 중에 중대형 컨테이너선까지 수주를 확대한 점 등을 고려하면 아쉬운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RG 발급을 받지 못해 올해 중형조선사 전체 수주의 약 44%에 해당하는 8척의 컨테이너선 수주가 취소되며 수주 감소 폭이 더욱 커졌다는 게 양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같은 기간 수주액은 14억달러(약 1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53% 감소했습니다. 중형사들의 수주액이 국내 신조선 수주액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21년 6.8%에서 2022년 3.1%로 크게 축소됐습니다.
양 연구원은 “중형조선사들이 당면한 문제로 인력난과 RG 발급 한도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정책 추진 시 대형사보다 중형사의 인력난이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정부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적절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업별 RG 발급의 한도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신조선 가격 상승으로 한도가 조기 소진됨에 따라 시황 호전에도 조선사들이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내 조선소, 탱크선 부진 뼈아팠다
탱크선 수요 부진 여파에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중형선박 수주량 역시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의 중형선박 수주량은 152만CGT로 전년 대비 53% 감소했습니다.
상반기는 컨테이너선 수주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101만CGT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는 탱크선 수요 부진과 컨테이너선 발주가 급감하면서 전년 대비 53.1% 줄어든 52만CGT에 그쳤습니다.
유조선과 제품선 등을 포함하는 중형 탱크선의 발주가 급감한 게 국내 조선사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조선사들의 중형 탱크선 수주량은 33만CGT(13척)로 전년 대비 79.3% 줄었습니다.
2020년 이전까지 중형선박 수주의 80% 내외를 차지했던 탱크선 비중이 지난해 4분의 1 수준인 21.4%로 쪼그라들면서 조선사들의 실적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내 조선사들은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4척 9척의 탱크선을 수주했습니다. 모든 중형 탱크선 수주는 케이조선과 대한조선 등 2개사에 의해 이뤄졌으며, 대형조선사와 현대미포조선의 수주는 전무했습니다.
하반기 탱크선 시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운임이 빠르게 상승하는 등 호전됐지만 발주량 개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수주 증가는 소폭에 그쳤다는 게 양 연구원의 분석입니다.
같은 기간 컨테이너선 수주량 역시 88만CGT로 3.4% 감소했지만 전체 선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8%로 가장 컸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조선사들은 소량 수주에 그쳤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은 건조 경험이 많은 1400~2800TEU급을 중심으로 73만CGT를 쓸어 담으며 전체 컨테이너선 수주량의 83.5%를 차지했습니다.
부진한 탱크선시장 대신 활발한 수요를 보인 컨테이너선시장에 집중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하반기 수주는 14만CGT에 불과했습니다.
가스선인 액화석유가스(LPG)선 역시 10만CGT(5척)로 1년 전과 비교해 79% 급감했으며, 벌크선 수주는 아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탱크선과 더불어 중국 조선소에 일감을 빼앗긴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자동차전용선은 시황 호조로 전년 대비 23% 증가한 21만CGT를 확보, 유일하게 수주량이 증가했습니다.
양 연구원은 “국내 중형조선업이 강점을 가진 탱크선시장이 심각한 침체를 나타냈고 컨테이너선 발주마저 하반기에 감소하면서 중형 선박 수주가 위축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대형조선사들의 중형선박 수주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년째 지속된 대형 LNG 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의 풍부한 수요로 중형시장에서의 영업 유인이 없어지면서 전년 대비 30% 감소한 16만CGT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중공업 등이 컨테이너선과 자동차전용선 등을 수주한 게 전부입니다.
세계 중형조선 시장에서의 국내 조선사 수주점유율은 전년도 13.4%에서 2022년 11.2%로 2.2%p 하락했습니다. 대형사들의 점유율은 전년도 1.0%에서 2022년 1.2%로 소폭 상승한 반면, 중형사들의 경우 전년도 5.4%에서 3.3%로 축소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