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선 특허 갑질 그만"..국내 조선사, 또 낭보 떴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화물창 원천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회사 가즈트랑스포르 에 떼끄니가즈(GTT)가 한국 조선소에 화물창 기술을 제공하며 다른 서비스를 끼워 팔던 '갑질' 행태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국내 조선사들은 GTT로부터 기술 지원 서비스 등을 받고, 울며 겨자먹기로 비용을 지불했지만 앞으로는 불필요한 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18일 해운전문지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GTT가 조선사들에게 '기술 지원' 서비스를 끼워팔던 행위가 앞으로는 불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최근 한국 대법원이 GTT가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면서, GTT의 행위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라는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GTT는 LNG선에서 LNG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화물창 기술 특허권 시장의 세계 1위 사업자입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그간 GTT의 화물창 기술을 이용하고 선가의 5% 가량을 로열티로 지급해왔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GTT가 국내 조선사들과 화물창 기술 특허권을 거래하면서 기술 지원 서비스까지 한꺼번에 제공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해왔다는 점입니다. 기술 지원이란 LNG 화물창 기술을 실제 선박에 적용하는 과정에 필요한 설계도면 작성, 현장 감독, 실험 수행 등의 작업을 의미합니다.
이에 지난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는 GTT가 기술 지원 서비스를 끼워 파는 것을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자 불공정 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GTT는 반발하며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 시정명령에 대한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사실상 패소에 가까운 판결을 받았습니다.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 기준은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GTT의 행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돼 더 이상 기술 특허권에 기술지원 서비스를 끼워팔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GTT는 올해 1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결국 3개월만에 기각 결정을 받은 것입니다.
앞으로는 화물창 기술 특허권 계약과 기술 지원 서비스 계약을 별개로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국내 조선업계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며 반기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화물창 특허기술과 그 외의 기술 지원에 대한 계약을 별도로 나눠서 할 수 있게 된 것에 의의가 있다"며 "LNG선 건조를 많이 하는 한국은 GTT의 최대 고객 국가이기에 앞으로 협상을 통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기술 계약 숫자를 줄여나가면 비용을 절감하게 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조선 1분기 LNG선 시장 독주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올해 1분기에 LNG운반선 신조 시장을 사실상 독점, 중국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린 것으로 평가됩니다.
조선·해운 시황분석업체 Clarkson's Research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LNG선 발주량 156만cgt 중 우리나라 조선업체는 95%인 148만cgt를 수주했습니다. 척수로 환산하면 19척 중 17척을 수주한 것으로, 업체별로 살펴보면 HD한국조선해양이 가장 많은 10척을 수주했습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4척과 3척을 수주했습니다.
이렇게 한국 조선은 중저가 선박 건조에 주력하다 LNG선 시장을 넘보던 중국을 완벽히 압도했습니다. 중국은 2021년 7.8%에 불과했던 LNG선 수주 점유율을 지난해 29.7%까지 끌어올리며 한국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산하 후동중화조선은 올해 초 LNG선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과의 격차를 벌렸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LNG선에 차세대 공기 윤활 시스템(Hi-ALS)을 도입했습니다. 공기 윤활 시스템(Hi-ALS)은 선체 표면에 공기를 공급, 마찰 저항을 줄여 연료 소모를 줄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LNG선 운항 시 화물창 안에서 자연기화되는 LNG 손실을 보존해주는 ‘천연가스 재액화 장치(PRS)’를 개발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에너지저감장치(ESD) 등 친환경 기술을 LNG선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LNG선은 한국이 중국의 도전에 맞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 산업이기도 합니다. 당장 전체 조선 수주 시장만 살펴봤을 때도 우리나라(33%)는 지난달 중국(39%)에 밀려 점유율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에 비해 LNG선 만큼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입지가 탄탄합니다. 최근 LNG 수요가 높아진 만큼 LNG를 운반하는 LNG선 발주량은 2030년까지 연간 최대 50척 수준의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입니다. 한국 조선사들은 더 나아가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 차원의 지원 아래 성장하는 중국 조선업계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선 우리나라 정부도 R&D 지원 등 정책적으로 조선업계를 뒷받침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일각에선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다른 산업군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달 15일 정부가 발표한 6대 첨단산업 육성 전략에 친환경·스마트 선박은 제외돼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 ‘제조2025’에 스마트 선박을 선정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최근 정부는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확대 등과 같은 조선업 지원 정책을 발표했지만, 업계는 기술개발(R&D)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조선 분야에서 연구개발(R&D) 지원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관련 지원금이 다른 산업군보다 적고, 실제 조선 R&D 관련 예산이 예비타당성 심사를 거칠 때 기존 계획보다 3분의 1 이하로 삭감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현재 조선 시장의 화두는 ‘친환경 선박 시장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이며, 친환경 선박은 과거 조선업체들이 접하지 못했던 기술인 만큼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슈퍼 호황? 중형 조선사는 곡소리…"인력도 없고 금융지원도 부족"
대형 조선사들이 수주 낭보를 울릴 때 중형 조선사들은 탱커 시장 침체 등으로 수주액이 크게 위축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선업의 고절적인 인력난 문제와 대형 조선사 대비 제한적인 RG 발급(선수금환급보증) 한도 역시 중형 조선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중형 조선사는 총길이 100~300m 미만의 선박을 주로 수주, 건조하는 조선사를 의미합니다. 국내 대표적인 중형 조선사로는 케이조선(옛 STX조선해양)·대한조선·대선조선·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등이 있습니다.
18일 한국수출입은행의 '중형조선사업 2022년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중형조선사의 총 수주량은 28척, 75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44% 감소했습니다. 수주액은 21억7000만달러로 53% 감소했습니다.
조선 '빅3'가 수주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중형 조선사들은 여전히 수주 절벽 위기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탱커 수요 부진과 하반기 컨테이너선 수요 급감 등이 이유로 지목됐습니다. 여기에 RG 발급을 받지 못해 전체 수주의 44%를 차지하는 중대형 컨테이너선 8척의 계약이 취소되며 수주 감소폭이 커졌습니다.
그 결과 조선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액 비중도 쪼그라들었습니다. 지난해 국내 신조선 수주액 전체 가운데 중형사들의 비중은 3.1%를 기록했습니다. 전년(6.8%) 대비 반토막 이상입니다.
조선소 일감 부족 여파로 선박 건조량도 부진했습니다. 지난해 16척, 142만DWT(선박이 운반할 수 있는 중량)의 선박을 건조해 전년 대비 13.5% 줄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증가해던 수주잔량도 반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중형 조선사의 수주잔량은 83척, 187만CGT로 지난해 상반기 말 대비 14% 감소했습니다.
중형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와 건조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인력난과 제한적인 RG 발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조선업의 고질적 인력 문제로 중형 조선사들의 인력이 대형사로 옮겨가며 중형사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수주잔량 증가로 인도 예정 물량이 늘고 있지만 기능인력 부족으로 조선사들이 계약 기간 내 선박을 인도하지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납기일 내에 선박을 인도 못 할 경우 지연배상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제한적인 RG 발급도 문제입니다. RG는 조선소에 문제 발생 시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이 선주사의 선수금을 대신 환급하겠다고 약정하는 필수적인 서류입니다. 그런데 최근 2년간 신조선가가 30%가량 상승하며 중형사들의 RG 발급 한도가 빠르게 소진됐습니다. 한도 소진 시 중형 조선소들은 수주 여력이 있어도 선박 수주가 불가능합니다.
이에 무역보험공사는 시중은행의 RG 발급 참여를 늘리기 위해 관련 특례보증 비율을 최근 85%로 확대했습니다. 조선업 호황에도 부족한 RG로 중형 조선사들이 수주를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정부가 직접 나선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뿐 아니라 인력난이 심각한 중형 조선소에도 해외 기능인력 유입이 시급해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조선업에서 중형사들이 호황을 누리며 시중은행의 RG 발급 한도 상향 등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