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수주량 세계 1위인데.. 조선 3사가 웃지 못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선박 수주 물량을 ‘싹쓸이’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인력난으로 생산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오랜 조선업 불황으로 일감과 임금 모두 줄어든 탓에 근로자들이 조선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국내 조선업계 수주 실적은 순풍을 탔습니다. 영국 글로벌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7월 한 달 동안 116만CGT(표준선환산톤수)를 수주해 세계 선박 발주량(210만CGT)의 55%를 차지하며 3개월 연속 세계 수주량 1위 행진중입니다.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을 중심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가 늘어난 것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LNG 운반선 분야에서 중국 경쟁업체에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조선업계가 확보한 수주 잔량은 7월 말 기준 3586만CGT로, 약 3년 치 일감에 해당합니다.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일찌감치 수주 곳간을 넉넉히 채웠습니다.
한국조선해양은 1~7월 177억9000만 달러(약 23조4900억 원) 규모의 선박 건조 계약을 체결해 올해 목표치인 174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액도 각각 63억 달러(약 8조3140억 원), 64억3000만 달러로 이미 올해 목표치의 70%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최근 조선사들의 수주 실적에 대해 업계 한 전문가는 “최근 세계 경기가 인플레이션으로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해운업 시황도 좋지 않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카타르의 LNG 운반선 물량이 계속 나와 그야말로 원없이 수주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한때 가격 경쟁력 면에서 중국 조선사들이 주목받았지만 갈수록 선박에 들어가는 기술이 복잡해지는 추세”라며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하면 한국이 먼저 시장을 이끌고 이후 중국이 기술을 흡수해 한국을 따라오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조선소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대형 선박 건조에 짧아도 2년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수주한 물량을 각 조선사가 당장 건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국내 조선사들의 대규모 수주 행렬로 이미 현장에선 인력난이 가시화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말 20만3441명에서 지난해 말 9만2687명으로 54% 감소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조선업 불황으로 일감이 줄자 각 조선사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사이클 산업인 조선업의 특성상 일감 수주와 고용이 맞물릴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당장 현장에서 처리할 일감이 늘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인력은 부족한 과도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조선 3사는 물론, 중소 조선사까지 모두 인력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9월 기준 조선업계에 필요한 인력은 6만336명인데 9509명이 부족하다는 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측 추산입니다. 또 내년 6월이 되면 부족한 노동력은 1만1099명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또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수 조선업 근로자가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같은 육상 플랜트 산업으로 이직했다”며 “반도체 산업의 대규모 투자와 설비 증설이 이뤄지는 상황이라 인건비가 많이 오른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기능인력 시장은 크게 보면 조선업과 플랜트 산업의 경쟁인 셈인데, 각 조선사가 당분간 급여를 크게 인상하긴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조선업은 납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인데 자칫 생산 지연으로 선주 측에 인도가 지연되면 상당한 액수의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기에 이럴 경우 시장에서 평이 나빠져 수주량이 줄어드는 등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인력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 우려에 대해서는 지금 수주한 일감은 향후 2~3년 동안 단계적으로 커버할 것들이라 인력 문제도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지만, 일부 현장에선 하청업체의 물량 반환이나 생산 일정 조정 등이 현실화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조선업계의 인력난을 두고 노동계에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하청 근로자가 고강도 노동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2015년 말 65.7%였던 하청 근로자 비율은 지난해 말 50.9%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정규직 채용이 늘어서가 아니라, 하청업체부터 인력 감축에 나선 탓으로 풀이됩니다. 또 주52시간제 시행으로 특근이나 잔업이 줄면서 하청 근로자 수입도 급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도장, 용접, 취부등 노동 강도가 센 핵심 과정에 투입되는데도 임금은 원청 근로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조선업 하청 근로자들의 하소연입니다.
반면 조선사 측은 “당장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청 노동자뿐 아니라 원청업체 현장직과 사무직 모두 10년 가까이 임금이 동결되다시피 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조선업계 인력난은 비단 현장직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선박 설계나 R&D(연구개발) 분야도 사람 구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철강 등 다른 중공업 분야보다 조선업쪽 평균 연봉이 수천만 원 단위로 적다는 말도 나옵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2분기 조선 3사는 모두 적자를 냈습니다. 3개 업체의 영업손실액을 합하면 6204억 원에 달합니다. 한국조선해양은 2분기 매출 4조1886억 원, 영업손실 2651억 원을 기록해 3분기 연속 적자를 봤습니다.
같은 시기 삼성중공업은 매출 1조4262억 원에 영업손실 2558억 원으로 19분기 연속 적자, 대우조선해양은 매출 1조1841억 원, 영업손실 995억 원으로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조선업계가 당장 우수한 수주 실적을 달성해도 양과 질이 모두 나빴던 지난 몇 년 동안의 물량을 소화하기까지는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수주한 선박 공사를 진행하고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에 반영되려면 2년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후판 가격 변동에 따른 변수도 있어 각 조선사의 실적이 언제 개선될지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선박 건조 계약 지불 조건은 이른바 ‘헤비테일(heavy tail)’로 작업 후반부에 잔금을 많이 받는 방식입니다. 이는 작업 물량의 한 턴(turn)이 돌아야 조선사로 모든 계약금이 들어오는 셈입니다.
2020년 4분기~2021년 1분기에 본격화된 대량 수주 물량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출고되므로 이때부터 현금 흐름이 좋아지면서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비교적 높은 가격에 계약한 지난해 2분기 물량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는 2023년 하반기에는 조선사들도 흑자로 돌아설 전망입니다.
문제는 현금흐름이 안 좋은 시점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내년 납품되는 선박 건조에 박차를 가하려면 현재 집중 투입돼야 하는 인력이 1만 명 가량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선사 처지에서 당장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조선업계 노사 양측의 주장에 대해 업계 한 전문가는 “둘 다 맞는 주장이지만 당장 묘수는 없어 보인다”며 “만약 회사가 수익을 많이 내 근로자들에게 높은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선사들 대부분이 7~8년간 불황을 겪어 현금유동성이 좋지 않고 적자도 적지않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루아침에 숙련 노동자를 양성해 현장으로 내보낼 순 없는 만큼 조선업 인력 문제는 단기전이 아니며 특정 조선소가 아닌, 사회 전체적인 고민이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근로자를 직고용하거나 당장 임금을 급격히 높일 수 없다면, 적어도 사이클 산업 특성에 맞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각 조선사와 노조는 물론,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 4개 주체가 조선업 불황에 대비한 일종의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여 호황기에 기금을 모아뒀다 업황이 안 좋아 일감이 없을 때 실직 근로자에게 직업 훈련을 시키는 식의 운용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조선업 인력 문제..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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